▲7회 장애해방학교 여섯 번째 강의인 '정립에서 자립으로, 자립에서 다시 연립으로' 강의가 7일 이룸센터에서 열렸다. |
"1960년대 말 미국에서 태동한 자립생활운동이 전면에 내건 '자립'이라는 지향은 신체, 일상활동, 노동활동에서 '의존'적인 존재로 낙인찍혀 왔던 장애인 대중에게 강력한 열망과 결집력을 부여했다. 이 때문에 자립생활운동과 자립생활센터는 전 세계 중증장애인 운동의 한 전형으로 자리 잡았지만, 자립생활운동은 근대 자본주의가 기반을 두고 있는 개인주의의 틀을 이념적으로 확고히 넘어서지 못했으며, 실천적으로도 신자유주의가 제시하는 기회 평등 및 시장주의적 대안, 자활적 노동정책에 동요하는 모습을 보여 왔다."
7회 장애해방학교 여섯 번째 강의인 '정립에서 자립으로, 자립에서 다시 연립으로'가 7일 늦은 3시 이룸센터에서 열렸다. 이날 강의는 계간 '함께웃는날' 김도현 편집장이 맡았다.
김 편집장은 한국의 자립생활운동이 일정한 임계점에 이르렀음을 지적하고 '자립'이라는 이념을 대신 '연립'이라는 가치를 지향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소비자주권과 개인의 선택권이라는 이념 때문에 신자유주의적인 사회서비스 시장화에 무비판적인 서구 자립생활운동과 우리나라 자립생활운동의 흐름을 볼 때 '자립'은 자본주의적 의미에서 '자활'과 연동할 가능성이 존재하며, 자립의 개념이 신자유주의적 개인주의에 포섭될 위험성이 있다는 것이 그 이유이다.
▲'함께웃는날' 김도현 편집장. |
김 편집장은 "인간이란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만 존재가 가능하며 '人'은 서로 기대어 의지하는 존재자임을 표상하고 있다"라면서 "그러나 근대 자본주의 사회는 인간을 원자화된 개인으로 분해했고 사람들 간의 관계를 화폐로 매개로 '기브 앤 테이크(give an take_주고받기)'의 관계로 치환해 '의존'을 지워버렸다"라고 설명했다.
즉, 인간은 본디 의존적 존재임에도, 자본주의는 이 '의존'이란 개념을 부정적인 의미로 낙인화시킨 것. 이러한 맥락에서 장애인운동진영이 '의존(dependence)'과 '자립(independence)'이라는 이분법적 틀 안에서 '자립'을 지향할 것이 아니라 이를 해체하고 새로운 가치의 '연립'을 지향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 편집장은 "장애인운동의 목표는 비정상인 존재를 정상화하는 것이 아니라 '정상', '비정상'이라는 이분법과 그 틀을 해체하는 것처럼 '자립'과 '의존'이라는 이분법을 해체하는 것이 우리가 추구해야 할 지향"이라면서 "'자립'과 '의존'이라는 이분법이 해체되었을 때 드러나는 새로운 가치가 바로 '함께 어울려 섬'을 의미하는 연립(聯立)"이라고 제시했다.
김 편집장은 "즉, 우리는 '자립'과 '의존'이라는 이분법을 넘어 '홀로 서기'도 '낙인화된 의존'도 아닌 '함께 서기'로서의 연립생활로 나아가야 한다"라면서 "또한 '연립'은 인간에게 있어 가장 자연스러운(然) 존재함(立)의 형태, 즉 연립(然立)이기도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한, 김 편집장은 '연립'의 관점에서 자기결정권을 바라볼 때 발달장애인 등에 대한 '자기결정권'에 대한 오해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자기결정권이란 능력과는 무관하며, 말 그대로의 권리임을 이야기해도 발달장애인을 둔 부모들이나 장애인 교육 및 복지 현장 종사자들은 원칙은 이해되지만, 현실적으로는 그게 되지 않는다고 푸념한다. 하지만 자기 결정권의 보장이란 어떤 주체가 혼자서 결정한 대로 하고 싶어 하는 대로 하게 내버려 두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며, 발달장애인뿐만 아니라 연립적 존재인 우리는 그 누구도 그런 식으로 자기결정권을 누리지 않는다."
이어 김 편집장은 "자기결정권이란 자기결정을 내리고 있는 다양한 주체들이 상호의존적인 관계 안에서 서로 소통하고 조율해가며 실현될 수밖에 없는 권리"라고 덧붙였다.
김 편집장은 노동을 연립적시민권으로 재구성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제시했다.
김 편집장은 "소위 '자활'을 위해 만들어진 '공공근로'와 그 연장선에 있는 '사회적 일자리'를 '공공시민노동'이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시행해 보았으면 한다"라면서 "공공시민노동 급여는 상용 노동자 평균 임금의 50%로 하고, 공공시민 노동으로 인정되는 활동은 국가가 아닌 시민사회의 다양한 단위와 공공시민노동을 하는 개인들의 신청을 받아 진행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김 편집장은 "신청받은 일이 공공시민노동에 합당한지는 여성, 장애인 등 소수자를 포함한 민간위원들이 3분의 2 이상으로 꾸려진 '공공노동위원회'가 심의를 하도록 하면 된다"라면서 "이러한 구상이 실현된다면 중증장애인이나 발달장애인들도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한 만큼은 아니더라도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위한 소득 보장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지난 10월 9일부터 진행된 장애해방학교는 오는 14일 늦은 3시 이룸센터에서 노르웨이 오슬로대학에서 특수요구교육 석사과정을 공부하고 있는 윤상원 씨의 '노르웨이 장애인정책-발달장애인 비시설화모델'에 대한 강의를 마지막으로 마무리된다.
김가영 기자 chara@beminor.com